누벨 퀴진 50주년 2. 식재료에 대한 시각

Nouvelle Utilisation Des Produits.

식재료의 새로운 활용.

지난 글에서 좋은 조리란 좋은 재료를 살리는 것이라는 새삼스러운 교훈을 살펴보았다. 다행히되, 그러한 누벨 퀴진의 유산은 지금까지도 잘 살아 숨쉬고 있는 듯 하다. 저온조리는 물론 아시아나 남미, 북유럽 등 다양한 지역의 퀴진이 주목받으면서 전통적인 열을 아예 이용하지 않는 염장 건조나 절임 등의 조리법이 활발히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보통의 과조리, 예외적인 적절한 조리'의 공식에서 벗어나 '보통의 미조리, 예외적인 적절한 조리'로 그림이 뒤바뀐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하지만 그래서 어떤 재료를 요리할 것인가라는 주제에 비하면 첫 번째 선언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잊어도 좋을 정도이다.

본장은 상당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원문의 독해와 현재 대한민국에서의 의의를 비판적으로 논한다.

Il est indéniable que notre époque de surproduction et de technologie abâtardit, empoisonne, élimine même, de nombreux produits. Gastronomiquemenl parlant, il n'y a pratiquement plus de poulet, de veau, de fruit , de pomme de terre, de boeuf, de gibier, de truite, de fromage, etc... La cuisine ancienne manière, même «haute» continue pourtant, sans broncher, à utiliser ces produits aseptisés et rigoureusement insipides. Les nouveaux chefs, eux, les éliminent plutôt qu'en masquer la pauvreté par des sauces agressives. li leur reste deux solutions(Gault & Millau, 이하 인용 생략)

우리의 시대가 과잉 생산의 시대라는 점, 그리고 기술이 식재료를 변질시시키고, 오염시키며 심지어 사라지게 만들기까지 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식의(Gastronomic) 측면에서 말하자면, 닭, 송아지, 과일, 감자, 소고기, 사냥한 고기(Game), 송어, 치즈 등과 같은 것들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적인 방식의 요리는 물론 «오트 퀴진» 조차도 군말없이 이러한 위생적이도, 맛이라고는 없는(tasteless) 식재료를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새로운 셰프들은 소스를 공격적으로 사용해 맛의 가난함을 감추기보다는, 그러한 재료들을 (주방에서) 사라지게 만들고 있다. 그들에게는 두 가지 해결책이 남아있다.


미식의 왕국이자 식재료의 천국이라는 프랑스에서 식재료가 맛없다는 말이 낯설겠지만, 분명 프랑스의 식재료라고 모두 맛이 훌륭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은 여러분도 아시리라 믿는다. 최소한의 기준만을 충족하려 만든 싸구려 와인은 프랑스 국기를 무색하게 만들듯이, 식재료의 좋고 나쁨은 국적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의 현실은? 따지고 들 힘조차 나지 않는다. 서유럽 요리에 필수적인 유제품이나 밀가루의 열악함을 넘어 좋은 한국 요리를 만들기 위한 식재료도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평범한 소비자가 닿을 수 있는 곳에 좋은 채소나 좋은 달걀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육류는 더욱 아득하다. 전부 식탁 앞에서 얇게 썰어 굽는 목적으로만 만들어져 그 이외의 용도로는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속칭 미식가들은 거세 여부 따위에나 목을 매고 있는 실정이다. 사육 환경이나 급여하는 사료 따위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으며, 이는 부수적으로 다시 서유럽 요리 환경이 나빠지는 데 일조하고 있다.

식품의 산업화의 역사가 길어도 프랑스 쪽이 더 길텐데, 프랑스의 오트 퀴진은 어떻게 그 길을 찾았는가? 다음의 내용을 보자.

a) faire ce que nous appelons la « cuisine du marché», celle que l'on prépare avec les produits choisis et achetés le matin même (les nouveaux chefs se lèvent tôt) ou dûment commandés. Ils découvrent chez les commerçants de qualité les rares et précieux (et coûteux) bons poulets, veaux, écrevisses, perdreaux, grenouilles, tomates, oeufs, truffes, etc...

새로운 셰프들은 우리가 "퀴진 드 마르셰"라 부르는, 같은 날 아침 엄선하여 구매하거나, 발주를 넣어 둔 재료로 준비된 요리를 만든다(새로운 셰프들은 일찍 기상한다). 새로운 셰프들은 양질의 거래처로부터 희귀하고 좋은(그리고 값비싼) 닭, 송아지, 민물가재, 자고새, 개구리, 토마토, 달걀, 트러플 등을 찾아낸다.

b) ils « font » avec ce que le monde moderne n'a pas encore abime ou qu'il a rèndu plus accessible maintient plus frais : les produits de la mer ( les huîtres sont meileures que jamais), le beurre, généralement très honorable, les légumes malgré les pesticides, le foie gras d'Israël, les asperges de Californie,etc...

새로운 셰프들은 현대 사회에 의해 아직 오염되지 않은 식재료나, 현대 사회에서 더 접근성이 개선되거나 신선해진 식재료를 사용해 «만들어낸다(faire/font)». 수산물(굴은 어느 때보다도 좋다), 버터, 일반적으로 아주 괜찮으며, 야채(농약을 치긴 했지만), 그리고 이스라엘산 푸아 그라, 캘리포니아산 아스파라거스 등...

여기서 누벨 퀴진과 현대 한국의 가장 큰 차이가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두를 탓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우리는 분명 부끄러워해야 한다. 값비싼 식사를 자칭하는 요리사들은 모두 같은 재료를 사용하고 있다. 철 내내 등장하는 저질 트러플이나 모렐은 오로지 허영을 위한 것이며, 수입 종자 일색의 초당옥수수나 하우스 딸기는 날짜 감각마저 잊은 지 오래다. 특정한 철에 인기가 있다고 하여 제철이고 신선한 것이 되지 않는다. 90년대 일리노이에서 발명한 초당옥수수는 도대체 왜 한식의 여름을 상징하는 재료가 되고 말았을까? 일 년 내내 재배하는 하우스 딸기는 왜 특정한 계절의 디저트를 상징하게 되었을까? 마찬가지로 일 년 내내 등장하는 메론은 땅에서 자라지 않는 것일까? 휘황찬란한 요리사들 중 이 질문에 대해 답하는 사람은 정말이지 없었다. 이게 여러분이 생각하는 한반도의 계절인가? 하다못해 대파, 양파, 마늘, 부추와 같은 채소들도 종자에 따라 철이 있고 특징이 있는데 스타 셰프들의 주방에 들어가면 모두 같은 것으로 바뀌어 돌아온다. 살아있는 재료에 대한 즐거움? 트러플과 캐비어를 어떻게 우겨넣은 황금의 즐거움만이 보인다(그리고 별로 즐겁지 않다).

전복, 장어, 북쪽분홍새우(단새우)로 대표되는 뻔한 해산물 역시도 그 혐의를 피해갈 수 없으며, 봄철의 도다리나 겨울의 방어와 같이 계절감을 살린다는 해산물 역시도 먹어보면 진정한 계절이 느껴지는 경우는 손에 꼽는다. 단순하게 세꼬시나 회를 떠서 먹는 경우보다 나은 계절감을 선보이는 요리사가 몇이나 있었는가? 랑구스틴이나 랍스터는 어디서 오는지는 알고 먹는지 모를 지경이다. 브르타뉴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랑구스틴은 왜 철이 다르고 품질이 다를까?

폴 보퀴즈가 플라마리온 출판사와 가장 먼저 쓴 책의 이름이 "La Cuisine du marché"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좋은 요리사가 되려면 서양이나 일본의 유명 셰프 레시피를 잘 베껴서 정체도 모르면서 흉내낼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요리하고 조리라는 과정을 통해 어떤 결과물을 낼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요리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를 처음부터 다시 의심하라. 직접 비교하고 느껴라. 이 재료는 어떤 맛 때문에 사용하는가? 그 맛은 어떤 환경에서 극대화되며, 어떻게 보존하고 전달할 수 있는가? 보퀴즈가 리옹의 시장과 텃밭을 떠나지 않은 것은, 그러한 모든 활동이 집대성된 바로 그 장소에서만 본인이 생각하는 요리가 온전히 표현되기 때문이다. 같은 트럭을 타고 청담동에 도착하는 재료 사이에 차이에 기대서 무슨 요리가 있겠는가?

요리사가 좋은 재료를 갈구하지 않으니 좋은 재료를 생산하는 생산자는 더더욱 없다. 예외적인 채소, 예외적인 버섯의 존재는 왜 불가능한가? 표고버섯과 배는 언제까지 추석 선물에 의지해야 하는가?

  • 지금이 여름이니 하는 이야기인데 주키니나 애호박도 그닥 달갑지는 않다. 결국 프로방스나 이탈리아의 아류 방식으로 조리하는데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겨울? 아직도 향이라고는 없던 중국산 송이버섯의 기억이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