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벨퀴진 50주년 3. 가짓수를 줄이는 이유

발렌슈타인의 위르겐 돌라스가 알라카르트가 사라지는 세태를 비판한 적이 있었는데, 굳이 이런 소식을 모르더라도 현대의 오트 퀴진이 어떠한 전형성을 굳혀가고 있다는 흐름은 모두 이해하고 계시리라. 정해진 코스 위주의 구성, 그리고 정말로 전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요리들의 삭제가 그것이다. 물론 애초에 외국 문화 중에서도 가장 낯선 것으로 수용을 시작한 한국의 경우에는 그것이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 프랑스 요리를 중심으로 하는 오트 퀴진에는 원래 전형적인 요리들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창작이라고 주장하는 대부분의 요리 역시 그것의 변형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이른바 교양 있는 고객이라면 자신이 선호하는 요리가 있기 마련이며, 레스토랑은 서비스로서 그러한 고객이 원하는 요리를 낼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게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의 방식이었다. 로시니 방식의 투르네도 로시니, 스트로가노프 가문 방식의 뵈프 스트로가노프, 웰링턴 공의 이름을 딴 비프 웰링턴과 같이 소고기라는 주제 하나로도 문화적 코드를 공유할 수 있었고, 단순한 생선 요리의 경우에도 전형적인 소스 몇 종류는 구비되어 있기 마련이었다. 고와 미요는 이러한 과거를 "조부모 시대에는 메뉴가 500가지는 있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고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을 제외하면 오늘날에는 메뉴를 무시하고 원하는 요리를 주문하기란 불가능하며, 그러한 전형적인 요리 자체도 준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분명 자연스러운 현상만은 아닌데, 못해도 예닐곱 종의 종류는 갖추고 있는 가장 전형적인 한식당의 예를 생각해 보면 그렇다. 물론 정작 서민적인 외식업의 뿌리에는 테이블 도트, 즉 정해진 메뉴의 출현과 보급이 훨씬 빠르기는 했으나 오트 퀴진의 이른바 테이스팅 코스로의 이행은 단순히 격을 내려놓은 결과는 아니다.

고와 미요는 이러한 과거를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으로 묻어두고 제공하는 요리의 종류를 줄이라고 요구한다. 이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냉장 기간의 감소, 즉 묵은 재료를 유지할 이유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구체적인 표현을 옮기자면 une cuisine plus immédiate, plus inventive, plus fraîche, moins routinière, toujours préparée à la commande, 더 즉각적이고, 더욱 창의적이며, 더 신선하고, 덜 일상적이며, 언제나 주문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요리. 그런 요리에 집중하기를 요구한 결과 타협점으로 등장한 것이 사전 정의된 테이스팅 코스이다. 고객으로부터 요구받는 전형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일차적인 문제로, 요리사는 재료의 가용성과 스스로의 의도를 고민하여 메뉴를 직접 완성할 책무를 갖는다.

물론 경향은 언제나 상대적인 것으로, 기후 변화에도 불구하고 큰 틀에 있어서 흐름이 유지되고 문화가 존재하는 한 어느 정도 요리는 일반성을 띄게 된다. 아무리 창의적인 요리사라도 의자 다리 요리 따위를 낼 이유는 없다. 오히려 독창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현대의 Alchemist 같은 경우를 보면 스스로의 설정 그 자체로 굳어있다는 느낌도 든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경영 전략적 선택의 문제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고, 특히 한국에서는 "더욱 창의적이며 덜 일상적인" 요리를 만나보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오히려 프랑스-이탈리아 요리를 한다는 주방일수록 사시사철 공급되는 공산품에 기대는 것에 더욱 익숙하지 않은가? 향이라고는 사라져버린 향신료, 어딜 가도 같은 맛의 통조림. 지불하는 가격의 단위가 바뀌어도 가끔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는 오늘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