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in:The Cookbook, Phaidon, 2016

Spain:The Cookbook, Phaidon, 2016

최근 소개했던 포트넘 앤 메이슨 쿡북에릭 리퍼트의 채소 요리책이 실전성에 무게를 둔 전술용이라면 앤소니 부댕의 세계여행르네 레드제피의 저널은 당장 주방에 서는 문제를 넘어선 차원의, 말하자면 전략 차원의 책이다.

두 가지는 주방에서 엄밀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잘 버무린 크루도가 깊은 생각을 불러일으킬수도 있고, 반대로 생각이 많은 셰프들의 창작물들이 위대함을 인정받으면서 종국에는 그 손아귀를 떠나 식문화 속 하나의 관습, 즉 레시피로 자리잡아 버리는 경우도 있다.

현재 한국어권에서 어느 쪽에 더 갈증을 느끼는지 무게를 다는게 무의미하지만, 그래도 빛이 드리우는 쪽이 있다면 조리의 차원이다. 먹고 만드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익숙한 요리로 무언가 새로 자리잡고 있다. 단순히 말해 감바스 알 아히요같은 요리를 만나기 얼마나 쉬워졌는가. 무언가 늘기는 했다.

그러나 다시 한국의 스페인 요리는 빠르게 지루해졌다. 감바스 알 아히요도 아닌 "감바스"로 자리잡고 나니 별로 풍경이 좋지 못하다. 바스크 등지를 들먹이지만 이상한 빠에야와 더 이상한 기름 새우요리말고 우리에게 남은건 없는가. 차게 먹는 토마토 스프같이 정서적인 어려움이 있는 요리들을 제외하더라도 스페인이 이렇게나 지루한 곳일리 없다. 뿔뽀? 어허 거기까지.

그런 갈증을 해결해줄 수 있는 책이 바로 이 스페인 쿡북이다. 파이돈에서 <더 실버 스푼>의 편집자가 편집을 맡은 이 책은 실버 스푼이 그랬듯이 원작이 있다. <1080 recetas de cocina>로, 요리 개수를 세보지는 않았지만 제목처럼 스페인 전역의 요리를 망라하여 기록하고자 도전한 책이다. 알려지기로는 스페인 출판 역사상 <돈 키호테>와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라니 스페인의 <더 실버 스푼>으로 불릴만 하다. 하지만 그 차이는 이 책은 한 명의 근성있는 저자의 손에 완성되었다는 점.

거의 천 쪽에 이르는 방대한 요리책의 요리들을 전부 구현해보기는 커녕 나도 다 읽어보지 못했다. 페이지를 빠르게 넘겨가며 눈에 띈 것들 중 재료가 허용하는 요리에 도전해보는게 고작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당장 따라해보지 않아도 매우 큰 의미를 지니는데, <더 실버 스푼>을 읽어본 적이 있다면 무슨 이야기인지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이 요리책을 천천히 살피기만 해도 스페인 요리의 영혼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는데, 해먹을 엄두는 안나지만 타조 스테이크와 레드와인 소스같이 마그레브-이슬람 문화권의 영향을 받은 흔적부터 블랑케트나 뵈프 부르기뇽같은 프랑스 요리까지 버무려진다. 그러나 한국에서 양념 치킨이, 짬뽕이 그랬듯이 그런 요리들이 스페인의 환경과 사람들의 문화에 맞추어 재조립된다. 염장육과 올리브, 토마토 등 남유럽의 기후에서 꽃피우는 풍미들, 로마-가톨릭 문화권의 사순절-카니발이 떠오르는 커다란 육류 냄비 요리 등을 차례로 살피다보면 반드시 따라하지 않더라도 스페인 문화권의 방식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왜 그런 요리를 하는가에 대해 공감해볼 수 있다.

저자가 본서를 영역하면서 우려했듯이, 재료의 저변이 너무나 달라 완전히 복제하여 쓰기는 어려울 공산이 크다. 스페인과 미국 사이에도 그럴진대 한국에서는 어떻겠나. 사업가들이 들여온 이베리코 돼지고기정도만이 풍성할 뿐 아몬티야도는 소스팬에 붓기에는 지나치게 가격이 고귀하며, 주키니나 리크를 애호박과 파로 대체하다 보면 뉘앙스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요리책을 읽어보는 경험은 요리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준다. 단지 이름이 낯선 요리가 아니라, 재료와 조리 과정을 살핌으로서 요리를 하는 이유, 그 요리의 본질적 매력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생긴다. 우리의 일상 속 요리에 대한 태도를 떠올려보라. 잘 튀긴 돈까스란 어때야 하는가, 좋아하는 치킨 프랜차이즈는 어디인가. 바로 그렇게 다가와야 한다! 스페인의, 지중해 문화권의 다양한 요리들을 그렇게 삶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이런 책이 필요하다. 물론, <더 실버 스푼>의 한역판 출간도 한국의 이탈리아 요리를 근본적으로 바꿔주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혁명은 작은 곳부터 시작될 수 있다. 비루한 가정집의 주방에서부터 혁명의 깃발을 높이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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