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ANGO - 월든

TAANGO - 월든

"새로 오픈한 가게 알리미"같은 것을 하지 않기로 했으므로 몇 번을 들르고 충분한 시간이 무르익기를 기다렸다. 물론 이상적으로는 명확히 내세우기 위한 가치와 완성도가 정립된 이후에 영업을 시작해야겠지만, 한국 자영업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큰 관심이 없는(그리고 한국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계절 과일을 이용한 디저트에는 큰 관심이 없으므로 자연스레 이목은 다른 재료를 이용한 아이스크림으로 이동한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메뉴가 정말 단촐함에도 피스타치오를 주력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 흔히 젤라또 제조용으로 만들어진 반제품에 포함된 맛이기에 그런 재료를 사용하는 곳들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큰 인기를 얻고 있지 않다. 본래 다른 견과류와 비교되는 특유의 색과 향 덕분에 제과에서는 굉장히 자주 쓰이는 견과류인 만큼 개인적으로도 좋아하고, 특유의 향을 살리면서 식물성 지방과 유지방을 고르게 사용하여 텍스처를 구성할 수 있어야 하므로 판단에도 좋은 잣대가 되어주는 맛이라 생각한다. 이곳의 피스타치오는 그러한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지는 못했지만, 최소한의 존재 가치를 보여주는 정도로 만족할 수 있었다. 지나치게 볶지 않아 피스타치오의 가벼운 느낌을 보존하고 있었고, 지방과 함께 밀려들어오는 toasty, nutty한 팔레트가 썩 어울렸다. 다만 큰 맛을 내지 못하는 데다가 유의미한 식감의 차이도 보여주지 못하는 가루는 완전 사족이었다. 재료의 존재를 강조하는, 한국 영화의 소재주의를 떠올리게 하는 설정이다.

젠제로」를 강하게 의식하고 있는 버터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버터 젤라또라는 설정 자체가 프랑스 요리를 상징하는 고급 식재료로 홍보되고 있는 버터의 브랜드 가치에 기댄 설정이 앞선다고 생각하고 팔레트에서의 합리성은 뒤로 밀려있는 물건이라고 생각하므로 자세히 따지고 들 이유가 없다. 외려 관심을 끄는 것은 카망베르와 칼바도스, 사과를 이용한 맛이었다. 특별한 이름이 있지는 않지만 명확한 주제의식, 노르망디를 드러내고 있는데 노르망디에는 뻔히 존재하는 형식이 있음에도 그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어 일부러 그런 것인지, 몰라서 그런 것인지 흥미와 우려가 동시에 솟아올랐다.

우리 독자분들께서는 당연히 이미 떠올리셨으리라 생각하지만, 굳이 분량을 늘려 설명하자면 노르망디에는 독자적인 빙과 문화가 있다. 트루 노르망Trou Normand이다. 사과, 혹은 오드비에 절여둔 사과로 만든 소르베에 칼바도스를 뿌리거나 곁들이는 식으로 제공되는 일종의 아이스크림으로 식사 중간의 팔레트 클렌저로 지방과 강한 인상의 요리의 피로를 끊어내는 역할로 주로 쓰인다. 칼바도스와 사과, 두 종류를 이용한 아이스크림으로는 가장 전형적인 일종의 표준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탕고의 노르망디는 사과와 칼바도스 두 재료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도 이러한 관습의 존재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의도된 묵과인지, 인문에 대한 관심 부족에서 온 것인지는 매장만이 알겠지만 다른 방식으로서 좋은 결과를 보여주었냐고 하면 아니었다는 점은 명확하다. 코냑과는 달리 특유의 청사과와 같은 가볍고 화사한 향기와 오크통 숙성에어 이어지는 바닐라/캐러멜 노트가 만나 진득한 과일 증류주 특유의 인상을 완성하는 칼바도스의 가장 전형적인 짝은 본체라고 할 수 있는 사과 그 자체로 앞서 언급한 트루 노르망은 물론 노르망디식 할머니 파이라고 할 수 있는 타르트 노르망Tarte Normande 역시 사과와 칼바도스를 곁들이는 방식이 유력하다. 칵테일에서도 칼바도스를 기주로 하는 잭 로즈, 허니문 모두 시트러스 주스와 시럽/리큐르를 넣고 셰이크하는 사워 스타일이다. 왜 이런 일관적인 경향성이 나타나는가? 칼바도스 특유의 화사한 과일향이 신맛과 가장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두뇌가 본능적으로 신맛을 떠올리는 향에 신맛을 배치하는 것 이상으로 자연스러운 짝짓기는 없다. 그러나 탕고의 향이 강한 카망베르와의 조화는 낯설기는 하되 전형을 깨뜨릴 만큼 파격적인 장점은 드러나지 않았다. 지방이 무언가를 충실하게 전달하기 위해 가득 찬 인상을 주지만 날것의 한국 사과-노르망디의 사과와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떫은맛의 함량이다-가 주는 익숙한 향과 어울리면 정체불명의 요거트, 혹은 하여간 사과 향이 나는 카망베르 치즈라는 모호한 결론에 다다른다. 반드시 노르망디 특유의 어법을 사용해야 노르망디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탕고의 노르망디는 "왜 노르망디인가?"를 전혀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포도가 자라기 어려운 지역에서 독일은 체리를 선택했다면 노르망디의 선택은 사과와 배였던 셈인데, 이곳의 사과와 칼바도스는 과일과 증류주가 아닌 얼떨결에 치즈와 동향이라는 이유로 불려온 것 같은 모습으로 어색하게 동거하고 있었다.

나는 이러한 결론을 두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역작 「월든」을 떠올렸다. 관습과 전통, 교육은 인생을 병들게 한다고 주장하던 그는 월든 호수에 움막을 짓고 원시적인 생활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고 역설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노르망디를 표현한 음식 역시 그런 주장을 하는 것처럼 들린다. 노르망디의 기존 문화를 배제하고 자신이 가진 인상에 직관을 더한 결과물을 해(解)로 도출하는 방식이 그렇지 않은가. 관습은 저주이며, 교육은 오염으로 말했던 소로만큼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물론 결국 스승이자 후원자였던 에머슨과 소로가 주창한 초월주의라는 사상 역시 결국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맥락 속에서 해석되는 오늘날이다. 교육하지 말 것을 주장했지만 정작 그 사상은 가장 잘 교육받은 이들, 칸트부터 우파니샤드까지 폭넓은 배경을 가진 식자층에게 향유되었듯이 완전한 원시란 그 자체로 모순이다. 스스로 모순을 보여주는 문명에 대한 안티테제, 저항 사상으로 의미가 있을지는 몰라도. 노르망디라는 주제를 드러낸 이상 그 자체를 모르고 만드는 일 역시 이론적으로는 상상해볼 수 있어도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프로젝트였던 셈이다. 역사와 전통을 모르더라도 오로지 맛의 합리성만을 무기로 돌파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겠지만, 결국 맛은 기억와 선입관에 점철된 미약한 감각일 뿐이다. 그 난제를 극복하지 못하고서야 한 컵에 KRW 7500, 스스로 내세우는 격에 걸맞는 경험의 제공은 불가능하다.

  • 매장의 메뉴판에는 페이 도 쥬Pays d'Auge 급의 칼바도스를 사용한다고 했는데, 숙성 연수가 길수록 부각되는 캐릭터는 무엇일까? 당연히 시나몬, 구운 배, 바닐라 등의 달콤한 뉘앙스일 것이다. 생과를 쓸 요량이라면 반대로 어린 술, 심하게는 아예 오드비가 맥락에는 더 어울리지 않을까. 가격이 높다고 하여 무조건 좋은 일은 아닐 수도 있다. 지금의 구성은 마치 타르트 위에 생과를 올린 형세와 같다. 물론 생과를 잔뜩 올린 지옥의 딸기 케이크와 망고 빙수의 나라니까 오히려 잘 팔릴지 누가 아는가? 그러려면 아이스크림이 사과를 뱉어내야 하겠지만...

https://gastronomyblog.com/2010/09/28/french-comfort-cuisine-by-chef-benjamin-bailly/

FYI: 지금은 샌 프란시스코에 있는 벵자맹 베일리가 페트로시앙에서 근무할 때 만든 트루 노르망. 전형적인 형태는 마티니나 쿠프 형태의 널찍한 잔을 사용하고, 사과 과육을 쓰기 때문에 흰 빛이 돌지만 의도적으로 청사과를 이용해 색을 내고 칼바도스를 그라니타로 연출해 특유의 상쾌함을 극단적으로 표현했다. 그라니타의 색을 보면 어느 정도 숙성된 원주를 사용했을지 보이지 않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