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말해주지 않는 라멘의 역사

일본 역사에서 라멘의 기록을 발견할 수 있는 때는 무로마치 바쿠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교토의 승려가 케이타이멘(経帯麺)을 대접했다고 기록하는데, 국수를 만드는 방법이 소금물을 사용하는 등 중국식 제면과 흡사한 점이 있어 태고의 라멘으로 일커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기록이 2017년 발견되기 전까지 일본의 주류설은 미토 고몬 기원설이었는데, 미토 고몬이 기록한 음식 역시 중국식 제면법과 유사한 면에 락교, 마늘, 부추, 파와 생강을 얹고 멸치 육수로 만들어 먹었다는 음식이 라멘의 조상이 아닌가 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무로마치건 에도건 실은 직접적인 기원이라기보다는, 20세기에 들어서 라멘이 일본의 주류 음식이 되면서 음식에 일본색을 더하고자 한 내셔널리즘의 산물이라 생각한다. 특히 미토 고몬설의 확산에는 그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 미토 고몬의 역할을 작게 평가할 수 없으며, 정작 그 미토 고몬도 중국에서 배워왔음이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일본 문화의 아이콘과 같은 인물을 내세운다는 점에서 꺼림칙한 점이 크다.

이후 라멘의 직접적인 모태라 할 수 있는 난징소바/츄카소바의 경우 1884년 하코다테의 요와켄(養和軒)의 기록이 가장 앞서는데, 하코다테가 미일화친조약으로 개항한 항구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요리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정확히 드러난다. 교토도 에도도 아닌 외산이라는 것이다. 이외에도 나가사키의 참폰(짬뽕)이 메이지대 간수/돈골/라드의 중국 라멘의 뼈대를 갖춘 음식으로 문헌에 등장하는 등, 라멘은 미토 고몬보다 개항에 훨씬 큰 영향을 받아 성장한다.

이후 라이라이켄, 혼라이켄 등이 등장하는데 잠시 시간을 건너뛰어 1972년으로 이동하자. 애초에 그 이전에 라멘이라는 음식이 어떤 형태로 존재했는지 결정하는 시간이 이 때이기 때문이다. 말이 좀 웃기겠지만, 라멘의 과거는 그 이전부터 존재하던 것이 아니라 후대의 시간으로부터 창작된 과거에 가깝다. 1972년 다나카 가쿠에이가 일본열도개조론을 들고나오며 일본 전국토에 막대한 토목 인프라를 조성하고 지방 산업을 육성하기 시작하는데, 이와 함께 일본에는 본격적으로 국내 여행이나 당일치기 여행이라는 개념이 대중화되기 시작한다. 물론 그 전에도 교토니 삿포로니 하는 유명 지역이 일부 있었지만, 모터라이제이션으로 불리는 60년대 말 차량 보급에 더불어 국토개조론의 추진으로 도로 및 철도 인프라로 이동이 원활해진데 맞추어 지자체들도 합을 맞춰 지역 특색을 발굴하여 강조하는 정책적 지원이 이루어지면서 자연스레 음식도 지역마다 다른 것이어야만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라멘이 그 일환으로 포섭된 것이다(이해를 돕자면, 녹두장군 블로그에서 시작된 "5대 짬뽕" 열풍이나 대전의 성심당 등 지역 빵집에 대한 현대의 과도한 HYPE가 유사한 맥락을 보여준다). 교토의 덴카잇핑(天下一品)이나 요코하마의 요시무라야(吉村家) 등 확고한 스타일을 보여주는 지역 명점의 개점년도가 70년대 초중반에 몰려있다는 점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이보다 빠르거나 늦었다면 이들의 위상은 달라졌을 공산이 크다.

가쿠에이가 판을 깔았다면 위에서 춤을 춘 것은 매스 미디어로, 기타카타 라멘의 예가 이를 잘 보여준다. 지금도 채 5만명이 살지 않을 정도의 촌락이지만 라멘의 인지도는 하카타나 삿포로와 경쟁할 정도의 입지를 지니고 있는데, 이러한 입지가 생긴 것은 1970년대 중반 이후이다. NHK의 「신일본기행」을 필두로 한 지역 여행 TV 프로그램과 잡지들이 앞다투던 중, 특이한 지역 음식을 내세울 것이 없던 기타카타에서 라멘을 내세운 것이 먹혀든 것이다. 성공에 고무된 NHK가 1985년 기타카타 라멘에 헌정하는 특별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지자체도 이에 호응해 라멘 단체 관광 상품을 개발하는 등 기타카타 라멘은 관언이 발을 맞추어 홍보하자 날개를 단 듯 유명세를 얻었으며, 이를 모델로 전국의 지자체와 미디어가 현지 라멘(ご当地ラーメン)을 열풍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80년대 라멘 소비문화의 정점을 보여주는 것은 요코하마의 라멘 박물관이라 할 수 있는데, 라멘 박물관은 전국의 유명점을 유치해 라멘 여행의 목적지 노릇을 하고자 건설되었는데, 내부를 1958년으로 설정된 공간에서 노골적으로 노스탤지어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연출하여 라멘을 쇼와적인 것으로 박제하고자 시도했다.

왜 1958년이었을까?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라멘은 일본의 개항부터 꾸준히 이어져온 음식인데 1958년이라면 굳이 타이밍을 느지막히 잡았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는 라멘을 일본적인 것으로 규정함에 더불어 한국전쟁 이후 재건을 시작한 일본경제의 성장기를 라멘과 엮어내고자 시도했다고 생각한다면 이해 가능하다. 그 과정에서 핍박자의 입장에서 각지에 라멘의 씨를 뿌린 이민자들의 존재는 망각되는데, 재미있는 점은 라멘의 보급에는 중국계 뿐 아니라 조선인, 즉 한국계 역시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가장 유명한 예시로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와카야마 라멘으로, 돼지뼈를 간장에 넣고 끓여 스프와 차슈에 사용하는 와카야마식 츄카소바를 정의한 마루타카 츄카소바 아로치 혼케의 타카모토 코지(高本光二)는 한국 출신으로 그의 라멘 방법을 많은 재일 한국인들에게 전수했으나 그를 포함해 그 누구도 재일이라는 사실을 공공연히 밝히지 못하고 일가를 이루었다. 또 하나는 앞서 언급했던 이에케의 본가 요시무라야로 역시 한국계의 손에 탄생하였으나 일본식 가명인 요시무라 미노루(吉村実)라는 이름으로 요시무라야로 개업, 아들 역시도 그 이름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

이제와서 라멘을 다시 이민자의 손에 쥐어주고자 할 마음은 없다. 이미 라멘은 동부의 데이비드 창이나 이반 오르킨, 서부의 블로거 라메니악(릭몬드 웡) 등 미국인들에 의해 완전히 재해석되기 시작했으며 이제는 초민족, 탈민족적 음식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과거는 배울 가치가 있을 것이다.


References

G. Solt, (2014), The Untold History of Ramen.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岩間 一弘, (2021), 中国料理の世界史 美食のナショナリズムをこえて. 慶應義塾大学出版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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