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마틴 - 2022년 봄/여름

더 마틴 - 2022년 봄/여름

팔자가 좋으면 엘 불리처럼 아예 문을 닫고 메뉴 개발에 집중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개점휴업 분위기의 비시즌이 자영업자들의 R&D 시즌이다. 아이스크림 가게에 있어서는 역시 동절기인데, 이번 동절기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가장 먼저 이곳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메뉴인 샌드위치 이야기를 해보자. KRW 15000? 16000? 하여간 이런 가격의 샌드위치로 개인적으로는 결코 사먹지 않는다. 일행과 메뉴를 조율할 때나 지금과 같이 취재 겸사의 경우가 아니면 아이스크림 한 컵에 빵을 별도로 구매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기 때문(KRW 12000 언저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미루고 미뤄두었던 이 메뉴에 대한 언급을 해야만 할 것 같다. 어쨌거나 이 가게를 상업적 성공으로 이끈 메뉴가 아닌가. 젤라또라고? 아이스크림의 품질은 애석하게도 상업적 성공과는 큰 관련이 없어 보인다. 이 샌드위치는 물론 좋은 아이스크림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성공의 사정은 한 곳에만 있지 않다고 느꼈다. 가장 첫째로는 틱톡 숏비디오를 보는 듯한 제작과정. 현재는 매장 구조를 바꿔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지만 조그만 가게에 있었던 시절 일종의 백바의 역할을 하게 되는 포제띠 건너편에 옹기종기 모여 샌드위치를 조립하는 과정을 촬영하는 것은 방문객들에게 어떤 의식과도 같았다. 영하 12~13도의 까다로운 환경에서 보관하는 재료를 쓰기 때문에 이를 응용해서 만드는 요리의 조리 과정은 강한 순간적 성질(instantaneousness, momentariness)을 지니게 된다. 조리보다는 조립에 가까운, 아이스크림의 샌딩과 조미 정도가 전부인 과정이지만 딱 숏비디오 시대에 걸맞는 소요시간과 앵글을 제공하고 있었으므로 소셜 미디어를 통해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쉬웠던 것은 아닌가. 그리고 둘째로는 맛 전달의 효율성. 요리사와 객은 요리를 매개로, 맛을 언어로 소통하지만 구술언어, 문자언어 역시 그 과정을 도울 수 있다. 나는 이곳이 그것을 가장 현명하게 활용한 예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왜냐 하면 그 과정에서 항상 주방이 귀를 열어두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의 샌드위치 조립 과정에 앞서서 과거에는 빵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개인화가 가능했었다. 중심이 될 맛부터 후추의 종류, 올리브의 품종까지도 조율이 가능한데 실제로 옵션을 변경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나 설명하고 이해하는 과정은 일종의 인지적인 조미료로서 기능한다. 설명을 통해 제작자의 의도가 선명해지는 만큼이나 사람의 인지 역시 그것을 감안하게 되므로 실제로 맛을 느끼는데도 도움이 된다. 플레이버 휠 따위가 기능하는 방식을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쉬우리라. 셋째가 그 자체의 맛. 기본적으로 훌륭한 매개체vehicle로 기능하는 크로아상에 단맛의 아이스크림, 짠맛의 하몽 이베리코에 후추의 얼얼함과 올리브의 향긋함이 후신경을 열어젖힌다. 결론적으로 일종의 '맛 범벅' 상태가 되는데, 기틀을 잡고있는 단맛과 풍성한 지방, 그리고 매개체인 탄수화물이 이것을 겨우 감당할 정도가 되므로 이 음식은 먹을 수 있는 축에 들어간다. 그러나 각 요소들이 정교하게 엮여있다기보다는 각자 좋은 만트라를 지니고 있다보니 좋은게 좋은 것이라는 식의 인상이다. 질산칼륨을 쓰지 않은 것을 고르다보니 예산에 큰 부담을 싣게 된 하몽의 짙은 감칠맛과 짠맛은 그 자체로 훌륭한 것이고, 피쿠알의 토마토, 녹색 풀을 떠올리게 하는 향 역시 본능적으로 인간을 자극하는 작품이다. 버터에서 바닐라로 이어지는 향은 빵-아이스크림에서 결코 어긋날 수 없는 향들이다. 총체적으로 초 고지방의 폭탄과 같은 음식이지만 각각 강하고 충분한 복잡함을 지닌 맛(flavor)을 지닌 재료들로 잠시나마 폭거를 가능하게 만든다. 이른바 빵순이나 빵지순례 등의 표현으로 대표되는 딱 한 번의 유행에 적절한 정도라 본다. 주관이 강한 음식으로서는 세밀함이 모자라고 반복하기에는 비일상에 어울리는 맛, 하지만 한 번으로 충격을 느낄 만큼 충분한 대미지가 있다.

이에 반해 이곳의 아이스크림은 일상의 간식으로 충분한 기능을 해낸다. 충분한 맛의 농도와 유쾌한 촉감을 두루 갖췄다. 익숙한 맛을 바탕으로 조금의 완성도를 얹어내는 차이를 보여주는 것들이 많다보니 추상적으로 간식거리를 떠올리다가 결국 동일한 장소에 머무르게 되는 스스로를 발견하곤 한다.
버터스카치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캐러멜 맛은 이번 겨울의 가장 큰 승리라 하겠다. 캐러멜을 이용한 아이스크림에 대해서는 무슈 벤자민 서울의 팔미에 정도를 언급한 바 있는데, 무슈 벤자민의 것은 맛을 떠나 보관의 실패로 사각사각한 덕분에 각하의견으로 끝내서 비교의 대상이 되기는 어렵다. 젠제로의 감태 캬라멜도 게시한 적은 있지만 그 자체를 논하려고 쓴 글은 아니므로 역시 수평비교의 대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굳이 둘의 기억을 뒤적여보면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두터운 캐러멜 자체의 향이다. 바닐라에 올리브유의 문법이 바닐라의 미들 노트가 입안에서 녹아 풀기 전의 빈공간에 올리브의 탑노트를 쌓는 방식이었다면, 캐러멜 위의 캐러멜은 오로지 캐러멜으로만 탑/미들/베이스가 모두 쌓이도록 만든 보조제였다. 나는 원래 아이스크림 위에 다시 당류를 뿌리는 행위를 매우 싫어하지만 이쪽의 캐러멜은 최소한의 합리성을 갖추고 있었다. 일단 본체의 비단같은 촉감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하나. 캐러멜은 컵 위에서 굳지 않으며 또 입안에서는 적절히 녹으므로 당덩이를 따로 녹이는 불쾌함이 없다. 그리고 표면에 뿌린 소금 알갱이가 입에 녹을 때와 그렇지 않은 아랫부분의 경험이 구분된다는 점에서 둘. 확실히 소금은 캐러멜과 환상적으로 어울리지만 단맛이 조금만 부족해도 곧바로 부담을 느낄 위험이 있다. 따라서 소금을 뿌린 부분을 맛볼 때에는 아이스크림이 허용하는 당도의 한계를 잠시 넘나들 필요가 생기는데, 바로 그 점에 한하여 이와같은 토핑이 허용된다.

결론적으로 캐러멜화 반응을 하면 단맛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음식으로 만든 것 같은 인상인데 캐러멜 반응의 단짝인 쓴맛이나 그을음은 없다는 점은 약점이다.

따라서 빵의 처방이 적절하다고 본다.

피스타치오는 피스타치오가 아니라 피스타치오를 바탕으로 한 무언가가 되는 중이었는데 곧 단종되서 굳이 자세히 다룰 이유는 없다고 본다. 피스타치오와 디사론노 두 가지의 맛이 뒤섞여 있었는데 증류주나 리큐르, 와인 등 술을 flavoring agent로 쓰는 곳은 서울에 잘 없으므로 그 자체로 재미는 있다.


자주 가는 곳이지만 모든 메뉴가 완성되었다거나 차원이 다른 경험을 선사해서 발걸음이 닿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공간은 넓고 쾌적하지만 운영 인원은 적으므로 환경은 아슬아슬하고, 특히 화장실은 낡은 시설을 인수한 덕분에 불유쾌하다. 하지만 일단 타히티 바닐라빈을 깎아서 만드는 바닐라맛 젤라또가 훌륭한 완성도로 언제나 존재하고 있고, 한국적인 고급스러움-옅은 맛, 적은 지방, 저렴한 재료와 훌륭한 마케팅-과 대비되는 풍성한 지방 바탕의 쾌락적인 아이스크림이 있기에 다시 찾는다. 단지 지방 비중이 높은 것이 아니라, 분자단위의 짜임새가 튼튼하여 입안에서 녹는 절정의 순간의 인상이 선명하다. 이러한 기술을 바탕으로 바닐라나 초콜릿은 기본에 걸맞는 방향성을 지니고 있되 적절한 처방으로 완성도를 갖추고 있으며, 포트 와인으로 피니쉬를 재미나게 빚어낸 티라미수, 프랑스적인 입맛을 잔뜩 반영한 카망베르맛 젤라또와 같이 맛을 여러겹 쌓아올린 아이스크림들은 때때로 찾을만한 재미가 있다. 적절한 품질이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으며 이른바 뻔한 맛으로서의 기능이 훌륭하므로 일상에 적합하다.

물론 맛 이외에도 끌리는 요소가 하나 쯤은 있는데, 아마도 이곳의 만트라라고 할 수 있는 정직함(integrity)이 그것이다. (나와는 정말 다르게) 먹는 것에 대한 우려를 가진 오너에 의해 운영되는 여파로 정말 거의 모든 재료가 공개되고 있는데 하나같이 얼토당토않게 비싸다. 어떤 것들은 그 맛의 진가가 쉬이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프로라도 구분하기 어렵지만 하여간 그렇게 운영하고 있다. 성게 상자 포장지 맞추기와 한우-랍스터로 대표되는 소재주의식 서울 외식문화의 바깥에서 정말 사소한 것까지 과도한 비용을 쓰는 이런 가게가 오히려 진정한 소재주의 아닐까? 물론 나는 소재주의자는 아니지만.

굳이 사족을 달자면 이 가게는 한 단계 도약하지 못하고 있는데 거기에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러닝메이트라고 본다. 현재 젤라또는 일상의 영역에 편입되기보다는 일회성의 유희로 보는 수요가 압도적인 현실에서 일상 요리로서 영역을 확장하는건 자영업자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상책은 상부상조하는 것이고 중책은 나라도 살자요 하책은 남을 공격하는 것인데 이 업계는 뒤의 두 가지만 채택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업자간의 헐뜯기, 그리고 레시피와 함께 이전되는 것 같은 블로그 체험단 후기들이 그것이다. 세상이 이런 이상 딱히 무언가 바라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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