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텐더 2016 - 2024

서울 텐더 2016 - 2024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고백컨대 나는 크래프트 칵테일 무브먼트의 신봉자였다. 낡고 단순한 재료들의 지루함을 벗어나 과거로, 미래로 마음대로 뻗어나가는 믹솔로지스트들의 세계에 밝은 미래가 있으리라 믿었고, 특히 그들이 현대 조리기법을 흡수하고 그 사상적 방향성까지 모사하기 시작하면서 믹솔로지는 세계적인 유희가 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나의 음료관을 단숨에 바꾸어준 계기가 있었다면 서울 텐더의 그래스호퍼였다. 생크림 자체가 없던 날도 많아서 다시 주문하지 못했던 것도 몇 번인 열악한 세상 속에서 피어난 단순하면서 화려함의 극치는 불을 쓰는 주방의 기술을 훔치지 않고도 홀로 빛나는 냉각요리, 액체요리, 단맛의 요리로서 칵테일이라는 음료의 세계의 가능성을 여느 믹솔로지스트들의 신작품보다도 명징하게 드러내 보였다. 런던과 뉴욕을 바 문화의 수도로 생각하던 내가 일본의 역사를 공부하게 만들었을 만큼 텐더가 내세우는 비전과 가능성에는 확신이 있었다.

서울 텐더는 바의 격전지라고는 할 수 없는 내자동 골목에서 한국의 바와 음료 문화의 변혁의 최전선을 도맡았다. 인근에 위치한 광화문 앞 포시즌스 호텔 찰스 H.가 미국과 유럽 도래의 믹솔로지 문화를 꽃피우는 심장부 역할을 했다면, 서울 텐더는 힙하지 않은 모든 바텐더의 미래를 위한 주춧돌이 되어주었다.

서울 텐더는 긴자 텐더의 유일한 노렌와케점이자, 제대로 된 칵테일을 맛볼 수 없는 흔하지 않은 공간이자, 내자동 상권을 만들어내고 일본의 어센틱 바 문화를 단순히 모방하는 것을 넘어 한옥이라는 공간에서 독자적인 한국의 바 문화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가장 크게 남은 것은 바텐더를 자녀에게도 당당히 소개할 수 있는 직업으로 만들겠다는 포부, 그리고 완벽한 맛을 추구하는 이유는 객의 행복을 위해서라는 지향성이다.

서울 텐더의 무대는 바뀌지만 그 꿈은 계속되리라. 진정한 뉴욕의 텐더 바가 되어있기를 바란다. 공간을 빌어 그간 서울 텐더를 거쳐간 서버, 바텐더, 고객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모두가 있었기에 올해까지 즐거웠다.

WE WENT THERE FOR EVERYTHING WE NEEDED. WE WENT there when thirsty, of course, and when hungry, and when dead tired. We went there when happy, to celebrate, and when sad, to sulk. We went there after weddings and funerals, for something to settle our nerves, and always for a shot of courage just before. We went there when we didn’t know what we needed, hoping someone might tell us. We went there when looking for love, or sex, or trouble, or for someone who had gone missing, because sooner or later everyone turned up there. Most of all we went there when we needed to be found.

J.R. Moehringer, "The Tender Bar"


같이 보기: 서울 텐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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