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픽스 - 다섯 자리 치즈버거

데일리 픽스 - 다섯 자리 치즈버거

만 원의 벽 이야기가 무색하게 포스트 COVID-19 시대의 인플레이션이 몰아닥치면서 한 끼 식사 만 원은 다가온 현실이 되었다. 그나마 가격을 부여잡고 있는 음식 중 하나가 햄버거인데, 거대 규모의 체인들 중심으로 운영되는 시장이다 보니 물가 상승분에 비해 초월적인 방어력을 보여주었다. 환율이 높을 때에는 잠깐이지만 미국의 빅 맥 세트 가격($3.99)보다 한국의 런치 가격(KRW 5500)이 저렴해지기까지 했다!

물가가 비싼 지역으로 오더라도 햄버거는 스스로 감히 만 원을 넘보지 않는 음식이다. 강남역 햄버거 가격의 기준값이 되는 쉐이크 쉑의 베이컨 치즈버거도 단품으로는 만 원을 넘지 않는다(2022년 11월 기준 KRW 9300). 그러나 데일리 픽스는 그 벽을 손쉽게 뛰어넘어 도전하고 있는데, 자매점인 버거 플리즈에서 더블 치즈버거를 먹을 수 있는 돈으로 이곳에서는 패티 한 장의 베이컨 치즈버거를 먹게 된다(같은 KRW 12900).

단순히 건물 임대료만 다르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므로 같은 요리사가 관리하는 가게라 하여도 같은 가격의 음식일 필요는 전혀 없다. 대신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 베이컨 치즈버거의 등장인데 플리즈에서도 BBQ 베이컨이라는 이름의 메뉴가 있긴 했지만 주문해본 적이 없고, 지금은 메뉴에 보이지 않으므로 차별점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데일리 픽스의 베이컨 치즈버거에는 그 차액만큼의 부가가치가 있었는가? 먼저 인상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햄버거 경험의 중심에서 손에 잡히는 것은 부스러지는 질감(crumbleness)이다. 빵의 조직은 물론 패티도 점잖은 정도로 뭉쳐내 햄버거는 몇 번의 왕복운동만으로 입안에 고루 흩어진다. 패티는 물론 베이컨까지 씹는 가락대로 기름이 흘러나오므로 첫 한 입은 썩 촉촉하면서도 강한 만족감을 준다. 이에 치즈가 살짝 달라붙을 정도가 되면 시간차로 베이컨과 홀그레인 머스터드가 후반부의 경험을 지배한다. 겨자 알갱이를 씹는 감각이 다소간 지방의 피로를 덜어내지만 글루텐이 썩 발달하지 않은 빵을 씻어낸 뒤에도 베이컨 조직이 남아 저항하면서 햄버거의 하모니에 불협화음이 섞여든다. 강하게 볶아대지 않은 양파의 섬유와 겨자씨가 나름 동반자 역할을 하지만 일상적인 버거에 알파를 더할 수 있는 음식이라고 하기에는 다른 개념을 제안하거나 정교하다거나 하는 차이를 크게 보여주지 못한다.

직접 만든 베이컨, 가지튀김 등 여러모로 190을 생각하게 되는데, 본지에서 수평 비교는 되도록이면 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같은 값이면 190쪽에 비해 같은 설정에 대한 정교함에서는 눈에 띄는 차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참고로 직접 만든 베이컨을 강조하는 곳으로는 ckbg.lab도 있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전부 같은 사료, 짧은 사육 기간을 가져가는 원육의 한계를 가진 가공육이 과연 부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명분이 되어줄지에 대해서는 같은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국내에서 고가의 돼지고기 시장을 빠르게 장악한 이베리코의 경우 최소 10개월, 기타 프랑스의 품질을 인정받는 코르시카 돼지나 페이 바스크의 돼지 역시 도축 하한선이 12개월이다. 그리고 지방이 충분히 쌓이는 돼지의 특성상 강제로 살을 쯰우는 조류와는 달리 출하를 앞둔 일정 기간동안 지방이 높은 사료를 제외하고 도토리나 밤 따위를 줏어먹게 두는데 결국 이런 점에서 지방이 가진 뉘앙스 차이를 만든다고 본다. 물론 베이컨의 경우 원육의 특징보다는 훈연의 품질, 그리고 향신료의 특징에 더불어 당류+염류의 균형이 큰 영향을 미치므로 실은 고기의 품질은 경험에 유의미하지 않을 공산이 큰데, 그를 감안하더라도 버거를 위한 베이컨으로서 아직 특별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는 플레이어는 보지 못했다. 데일리 픽스의 베이컨은 190처럼 무식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1/16~1/8인치의 표준형 베이컨에 비해 특별함을 더했다는 느낌은 주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햄버거는 아주 정교하게 만든 공산품을 상대로 한다는 점에서 장단이 공존하는 주제이다. 높은 보편성 덕에 소비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지만 반대로 그 친근하고 전형적인 인상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20만원에 육박하는 샴페인과 글렌모렌지로 장식된 데일리픽스의 주류 메뉴는 그러한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이 투영되어 있는데,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매장 곳곳에 느껴지는 '뉴욕 스타일'이 아닐까. 뉴욕의 음식을 따라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도시의 자유로움 따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말이다. 접시에 담아 먹을 수 있는 칠리 프라이만으로는 부족하다.

플리즈와 유사하게 점도를 강하게 잡은 아이스크림 셰이크는 여전했지만 상단의 크림은 과유불급이다. 크림이 내려앉지 않도록 아래만 빨아먹는 것이 이 셰이크를 완전히 즐기는 요령이다.

  • 같이 보기: 버거 플리즈

2020년 여름 치킨 버거

2020년 가을

2021년 2라운드 매장 식사

2022년 칠리 버거, 버섯 버거

  • 같이 보기: 데일리 픽스

뉴욕과 서울의 두 샌드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