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H. - 피냐 콜라다, 셰이크

찰스 H. - 피냐 콜라다, 셰이크

자주 가는 바마다 피냐 콜라다는 안되기 때문에 가장 좋아하는 칵테일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는 얼씬조차하지 않았다. 찰스 H.에는 막걸리를 이용한 코리아콜라다가 있긴 하지만 피냐 콜라다의 방향성을 따르는 음료는 아니기에 코코넛에 대한 욕망은 접어두었다.

그러다 찰스 H.에서도 피냐 콜라다가 주문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무심코 마셔보았는데 - 찰스 H.에서 마신 그 많은 음료들 중 과연 가장 잘못된 선택이었다. 애초에 이런 바에서 클래식 칵테일을 잘 주문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런대로 굴러가는 칵테일도 있기 마련이다(특히 스터 종류). 그러나 피냐 콜라다는 정말이지 잘못되도 범주를 넘어선 정도로 잘못되었다.

마이애미 메뉴 덕에 코코넛을 사용하는 바라서 공산품이 아닌 코코넛으로 스크래치부터 만드는데 사실 그런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피냐 콜라다는 물론 셰이크 칵테일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이 없는 점이 훨씬 문제였다.

단순하게 생각해보라. 피냐 콜라다는 코코넛 크림과 파인애플 주스, 럼으로 만든다. 일견 적도 부근을 떠올리는 재료를 대충 나열한 것 같지만 럼이 술, 파인애플 주스가 산, 그리고 미친 당분 함량을 자랑하는 공장제 코코넛 크림이 당이라는 술+당+산의 삼각이 형성되어 있는 클래식 칵테일다운 레시피이다. 게다가 식물성 지방까지 가세하므로 잘 섞이지 않는 재료들을 혼합하기 위한 셰이크를 채택하는 것은 당연하고, 셰이크를 충분히 할 필요성은 더욱 크다. 섞는 데 더해 어느정도 마우스필을 형성할 필요 역시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찰스 H.의 피냐 콜라다는 아마 열 번은 흔들었을까? 셰이크 칵테일이라고 하기에는 가히 민망한 것이었다.

한국에서 지난 수십년 간 여러 모습으로 탈바꿈했음에도 음지의 직업으로만 여겨져온 바텐더라는 직업이 세계적인 흐름을 받아들여 양지의 직업으로 올라오고 있다. 바텐더들은 마치 요리사들처럼 각종 주방 기술을 익히거나 재료나 철학 따위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종종 그들이 스스로 누구인지를 잊는 것은 아닌가 우려할 때가 있다. 기본적으로 바를 지키는 사람이라곤 하지만 경비였을 리는 없다, 바텐더는 지속적으로 객과 마주해야 하는 바 테이블 특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일 뿐 아니라 음료와 얼음을 조리하는 조리사의 역할을 겸비하고 있다. 이 기본적인 역할이 무너진다면 겉으로는 아무리 화려하게 꾸며지더라도 다시 위기가 돌아올 것이 자명하다. 칵테일 르네상스 이후 숨겨진 공간에서 과학 실험 하듯이 만드는 것이 칵테일의 일반적인 제조법이 되었지만 조리는 여전히 조리사의 숙달된 기술과 두터운 경험에 기반한 직관에 기반하고 있는 부분이 크다. 칵테일은 아무튼 알코올이기 때문에 좋다 식으로 지금은 넘어가고 있지만...

  • 같이 보기: 찰스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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